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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ife/Poetry

기형도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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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만한 지나침  written by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 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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