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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ife/Poetry19

홍영철의 '가슴이 뭉클하다' 가슴이뭉클하다 날은 저물었고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나무 하나 지나고 나무 둘 지나고 나무 스물, 서른, 마흔 지나고 풀 하나 지나고 풀 둘 지나고 풀 수도 없이 지나고 숲속 거기, 그 자리에 앉는다 멀리 하늘 위 별빛은 반짝거리는데 문득 가슴이 뭉클하다 언제였던가? 내 가슴이 뭉클했던 때가 너의 그 가슴이 뭉클했던 때가 예전에 어디서인가 잠깐 보았다가, 오늘 잠깐 짬이 날 때 정독을 해 본 시다. 사랑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미래도 현재도 아닌 과거의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혹은 뭉클함을 담은 시다. 살짝 아련하면서도 암울한 그래서 뭉클한 느낌이 든다. 대낮이 아닌 날이 저물어 가는 시간에 오솔길을 따라 어디론가 올라간다. 무언가 과거를 회상하는 분위기에 딱 어울리지 않는가. 새벽이나 아침 혹은 대.. 2009. 10. 29.
김기택의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김기택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 새 없이 지저귀느라 한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 2009. 4. 27.
복효근의 '헌 신' 헌 신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 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 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2009. 3. 30.
구상의 '오늘' 오늘 구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우리는 항상 미래를 위해 현재의 기쁨을 누릴 줄 모르고, 무언가 거창한 것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대한다. 또한 과거의 잘못 회한으로 현재의 행복을 누릴 줄 모르고, 그 과거에 매여서 현재를 그 괴로운 과거처럼 후회하며 보내버린다. 구상 시인은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옹달샘에서부터 바다에까지 이.. 2008.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