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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ife/Poetry

김기택의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Humaneer 2009.04.27 12:33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김기택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 새 없이 지저귀느라
한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틈이 없다.



 

단 0.1%의 오차도 없는 씁쓸한 나의 이야기


어제 저녁 정주와 배드민턴 셔틀콕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제법 꼼꼼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리석으로 된 아파트 복도를 걸어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아파트 복도를 나와 보도블럭으로 된 길을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아스팔트를 잠시 밟다가 슈퍼마켓에 가서는 플라스틱으로 된 바닥재를 밟았고, 마지막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제법 신나게 놀았다. 흙은 단 한 톨도 밟지도 않았다.(혹은 못하였다).


우리 동네 놀이터엔 모래흙이 없다


놀이터에는 흙이 있지 않느냐고? 우리 동네 놀이터엔 고운 황금빛깔의 모래흙대신, 모래흙의 푹신함만 베껴온 스펀지 재질의 바닥이 있었다. 그 바닥 위에서 정주와 나는 그네를 타고 미끄럼을 타며 장난치고 재밌게 놀기는 하였다. 아마 어린 꼬맹이들도 재미나게 놀기는 하겠지. 하루종일 놀아도, 넘어지고 뒹굴어도, 옷과 몸에는 흙투성이가 될 걱정없이 아~무런 걱정없이 놀기는 하겠지. 하지만 학원가기 바쁘고, 컴퓨터 게임하느라 바쁜 꼬맹이들이 최첨단 스펀지 바닥으로 된 푹신한 21c의 놀이터에서 얼마나 뛰어 놀 것이며, 논다 할 지라도 모래흙이 무엇인지나 알까? 그 아이들이 자라서 흙으로 반죽을 하며 놀던 그 놀이, 놀다가 넘어져서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버려서 어머니께 무지하게 혼났던 그런 더럽고 지저분한(?)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조차도 지금 이 글을 쓰며 '간신히' 기억해낼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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