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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ife/Poetry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2.
접시꽃 당신  written by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염한 붉은색이 아닌 청초한 붉은색인 접시꽃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이 '송' 이셨는데.. 송 무슨 선생님이 셨더라? -_-; 나의 기억력도 이젠 한물 갔나보다.  아니지 난 항상 기억하고픈 것은 기억을 잘 못하니 그닥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송 무슨 선생님의 문학수업은 꽤나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유정의 '동백꽃' - 오늘도 우리 닭이 쪼이었다로 시작하는 무지 재미난 소설! -에 대해 수업을 하실 때 너무 열성적이라 동백꽃이라는 별명까지 붙였으니 말이다.


anyway~ 이 선생님께서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던 기억이 난다.  죽음을 앞둔 부인에게 바치는 시를 썼는데 당시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흘리게 하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부인과 사별하고 얼마가지 않아 재혼을 했다고 말이다. -_-  뭐 다들 아시다시피 나는 편견이라는 것이 꽤나 있는 편이라, 시를 읽지도 않고 내 멋데로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보나마나 뻔한 최루성의 시일 것이고, 온갖 미사여구와 관용구를 사용하여 눈물 흘리기 좋아하는 사람들 꽤나 울리는 시일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엔 재혼을 해버린 어처구니 없는 시인이라고.


그로부터 대략 9년이 지났다. 우연찮게 이 시를 감상하게 되었는데, 나의 편견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는다. 정말 파장을 일으킬만 하구나, 이렇게 절제된 문체로 부인과 사별해야하는 슬픔을 절실히 나타낼 수도 있고나 라고 말이다.  또한 그 크나큰 슬픔을 자신 보다 더 어렵고 슬픈 사람들의 아픔과 연관하여 의연하고 겸허하게 극복을 해나가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내 뒷통수를 마구마구 후려쳤다.


두 부부는 조그마한 시골에서,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것이다. 자연을 닮아 서로 아껴주고 보살펴주고 악한 마음 품지않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 못할 만큼 착하게 살아온 그런 부인과 사별해야하는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그러나 시인은 부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슬픔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내고자 하며, 또한 먼저 가야하는 부인을 침착하게 다독거린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부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며 시는 마무리된다.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이 시를 보지도 않고 그저 그런 사랑 놀음에 최루성 詩일 것이라 멋대로 생각해버린 내가 심히 부끄럽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스러운 점 하나, 시인은 사랑이 너무 그리워 결국 다른 사랑을 찾은 것일까?  혹자는 도종환 시인의 다른 시를 살펴보면,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 사별한 부인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1년이라는 세월이 길다면 길수도 짧다면 짧을수도 있겟지만, 그래도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을 보내고 재혼을 한다는 사실이 좀 우습기도 하다. 제법 생각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사실 바람이다-_-)은 재혼한 여인이 시인의 전부인의 제삿날을 먼저 챙겨주는 그런 사람은 아닐까? 시인의 아픔까지도 감싸주는 또다른 사랑스러운 여인은 아닐까?


인터넷에 어떤 사람은 사별한 부인을 팔아 새살림 차렸다 -_-;;;;;;  라고 하지만 ... 그것은 솔직히 오버인듯.
어쨌든 봐도봐도 가슴이 쓰라린 시다.

** 참고로 이 글은 예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옮겨 온 것이다. 실제 작성일 2007년 6월 27일